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스타브 2세 아돌프 (문단 편집) === 내치 === [[대한민국]]에서는 [[30년 전쟁]]의 주요 지휘관으로 알려져 있으나 스웨덴에서는 국내 개혁을 더 높게 평가한다. 문제는 그렇게 쌓아올린 국가적인 역량을 다 [[전쟁]]에 쏟아부었다는 것이며 스웨덴은 그 시기 프랑스마냥 전쟁과 내정이 동시에 가능한 미친 국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당장 전쟁부터가 가진 모든 것을 짜내야 가능한 수준의 국력이었기 때문에 승전과 개혁이 황금기로 이어지지 못했다. 전국에 재판소를 세워서 법치주의의 근간을 마련했고, 잦은 전쟁으로 폐교 위기에 몰렸던 [[웁살라 대학교]]를 다시 부흥시키는 한편 [[에스토니아]] [[타르투]]에 타르투 대학교를 설립하여 인재 양성에 힘썼다. 또한, [[네덜란드 공화국|네덜란드]]에서 차관을 빌려 [[팔룬]] 등지에 구리광산을 개발했는데, 이 대목은 경제적, 군사적인면 모두 중요하다. 스웨덴의 무역 규모를 10배 가까이 끌어올리는 동시에 대포의 대량 보유를 가능케 해서 군사력을 크게 증강시키는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인데, 이 당시 대포는 내열성 때문에 포신을 청동으로 주조해서 그렇다. 참고로, 철제 주물 대포 같은 것도 있었으나 청동제 대포에 비해 훨씬 저렴했지만 신뢰성이 낮아 초기엔 거의 해적들이나 쓰는 용도였다. 그러나 그런 주철 대포를 [[헨리 8세]]가 심혈을 기울여 개발해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대에 아르마다를 격파하는데 쏠쏠하게 써먹으면서 급격하게 확산되었다. 강철 포신으로 된 대포는 [[19세기]] 독일의 [[크루프]] 사에서 처음으로 만들어 만국박람회에서 선보였다. 이외에도 군사 개혁과 맞물려 군관구를 창설했고 오늘날 [[스웨덴]]과 [[핀란드]]의 [[주(행정구역)|주]][* [[스웨덴어]]로는 Län, [[핀란드어]]로는 Lääni.]의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스웨덴의 [[예테보리]], [[우메오]], [[룰레오]], 핀란드의 우시카우풍키(Uusikaupunki)[* 스웨덴어로는 뉘스타드(Nystad). [[대북방전쟁]]을 끝낸 뉘스타드 조약이 체결된 장소로 유명하다.]와 소르타발라(Sortavala)[* 스웨덴어로는 소르다발라(Sordavala). [[겨울전쟁]]의 패전으로 핀란드가 [[소련]]에게 빼앗긴 전략적 요충지이다.]를 세웠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